과르디올라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철학이 담긴 전략과 용병술로 만들어 낸 바르셀로나이건만, 자신을 상대하게 된 바르셀로나는 아예 다른 모습을 한 채 자신 앞에 나타났다. 물론 바르셀로나의 선수단이 그렇게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공격수 수아레즈와 미드필더 라키티치가 새롭게 영입되었지만, 전체적인 선수의 면면은 이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의 뮌헨을 상대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바르셀로나는 티키타카라고 말하기 힘든 경기운영을 보여줬다. 오히려 상대 수비진에 바로 전달되는 다이렉트 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이끌던 때와는 체질적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현재의 바르셀로나였다.
일부 사람들은, 과르디올라가 거둔 바르셀로나에서의 성공이 감독의 역량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선수들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즉, 굳이 과르디올라가 아닌 누가 오더라도 당시의 바르셀로나는 우승할만한 전력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이번 바르셀로나의 승리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승리를 개인 선수들의 역량, 특히 메시 개인의 힘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루이스 엔리케 감독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략 싸움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이들은 마치 바둑을 두는 듯 한 수 한 수 치열한 고민을 했다. 물론 결정적인 차이는 메시의 엄청난 활약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위한 포석은 엔리케 감독이 둔 것이다.
이들이 어떤 수를 두었는지 경기의 시작시점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수비진의 배치를 봤을 때, 과르디올라는 수비 라인을 하피냐, 보아텡, 베나티아 세 명의 선수로 구성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하피냐를 좌측 측면 수비에 두었다는 것이다. 우측 수비 하피냐를 좌측 수비로 배치한 것은 메시를 잡기 위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메시를 봉쇄하기 위해선 오른발잡이인 하피냐가 왼발잡이인 베르나트보다 제격이라는 판단 하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하지만 메시의 봉쇄여부를 차치하더라도 현존하는 어떤 수비진도 바르셀로나의 MSN라인을 같은 숫자로 막아 설 수는 없을 것이다.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큰 스리백을 구성하도록 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제 4의 수비수 노이어의 존재였다. ‘스위퍼형 골키퍼’ 라고 불리는 노이어로 하여금 수비 뒷공간을 맡김으로써 수비수들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것이 과르디올라의 복안이었을 것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포백이 아닌 스리백을 구성함으로써 생겨난 수적 우위를 이용해 공격수를 막기보다 공격수를 향하는 패스를 차단하기로 했다. 세 명의 수비수 외의 모든 선수들은 엄청난 활동량으로 상대의 빌드업을 압박했다. 이런 스리백을 이용한 역동적인 압박 전략은 루이 반할 감독이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이끌고 구사한 전략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상대의 압박을 통한 공격권 전환을 피하기 위해 짧은 패스를 통한 수비진에서부터의 빌드업을 줄이고, 공격진영으로 직접 전달되는 패스로 공격 작업을 하도록 지시했다. 중앙 수비수 피케가 메시에게 바로 롱 패스를 전달하고 메시가 백헤딩으로 수아레즈에게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준 것이 이러한 지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역습 상황에서 바로 전달되는 다이렉트 패스로 인해 자신의 의도가 무산되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곧바로 포백으로 수비진을 전환한다. 하피냐를 기존의 위치인 우측 측면 수비로 되돌리고 좌측 미드필더에서 뛰던 베르나트를 왼쪽 수비로 내린다. 전반전 15분 만에 두 감독의 일 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먼저 웃은 쪽은 루이스 엔리케였다. 영리하게 과르디올라 감독의 함정을 피한 후에 오히려 빠른 카운터로 그를 한 발짝 물러나게 만들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반 15분 수비진을 포백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수비라인을 내리고 미드필더 역시 수비가담에 전념하도록 함으로써 가드를 올리는 형세를 취한다. 그러자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본격적으로 공세를 취하는데, 뮌헨의 미드필더들이 물러난 자리로 하여금 양쪽 풀백들을 공격적으로 전진시킨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비적인 공백을 그냥 넘길 과르디올라가 아니었다. 그는 레반도프스키와 뮐러에게 이 측면을 공략하도록 지시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로벤과 리베리의 공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 이 역할을 수행했던 로벤이 있었다면 아마 경기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중앙 공격수 자리에서 뛰는 것이 더 익숙한 레반도프스키와, 로베리 콤비에 비해 폭발적인 돌파력이 부족한 뮐러는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뚫어내는 데 실패했다. 차포를 떼고 경기에 임한 과르디올라 감독이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윙백을 전진시켜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바르셀로나와 이로 인해 생긴 허점을 노리는 뮌헨은 일진일퇴를 거듭하지만, 결국 먼저 유효타를 거둔 것은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의 우측 풀백 알베스는 마크해야 할 상대 윙어가 없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상대 공격진영으로 올라갈 수 있었고, 상대 좌측 풀백 베르나트를 압박해서 공을 뺏어낸다. 그는 이 공을 메시에게 감각적인 패스로 전달함으로써 1대1 찬스를 만들어냈고, 여지없이 메시는 득점에 성공한다. 역습을 노리며 가드를 올린 과르디올라의 뮌헨이었지만, 제대로 된 카운터 펀치 한 번 날리지 못한 채 상대의 공격에 휘청거리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마 과르디올라 감독은 여기서 꽤나 고민했을 것이다. 이대로 계속 가드를 올리고 상대를 막아낸 다음 2차전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공격적으로 나설 것인가?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공격 축구의 신봉자인 과르디올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원정에서의 득점이 홈에서의 득점보다 가치 있다는 사실 또한 그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뮐러 대신 괴체를 투입하는 동시에 수비라인을 끌어올리며 양쪽 풀백의 적극적인 전진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다시 뮌헨의 수비진과 MSN라인이 3대3 구도를 형성하게 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원정에서의 득점이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적인 선택은 결과적으로 패착이 되었다. 얼마 안 있어 메시는 간단한 드리블로 제롬 보아텡을 무너뜨리며 두 번째 골을 만들어냈으며, 또한 네이마르에게 완벽한 찬스를 제공하는 킬링 패스로 승부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자신의 옛 스승 과르디올라에게 완벽한 패배를 선사하는 메시였다.
과르디올라는 완벽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이것은 루이스 엔리케 감독과의 치열한 지략 대결의 결과였으며, 메시는 이 대결을 결정지은 것이다. 모든 것은 메시의 발끝에서, 라는 식의 표현은 두 감독들이 고민으로
지새웠을 밤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하나의 전략이라고 불리우는 메시와 이에 대항할 로베리의
영향력은 지대하나, 결과적으로 이들을 어떤 식으로 배치하고 큰 틀을 짤 것인가 하는 부분은 감독의 역량에
달려 있다. 과르디올라는 훌륭한 경기를 했지만, 루이스 엔리케는
이를 상대하기 위한 방책들을 모두 준비했으며 그의 선수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과르디올라는 메시에게
진 것이 아니라, 루이스 엔리케에게 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