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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인터넷라디오방송국

사연
2014.04.08 11:43

[하루살이] 사연입니다.

조회 수 851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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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올려도 될만한 사연인지 모르겠네요. 일단 배고픈 이야기이는 하나...좀 길기도 하구 ㅠㅠ



나를 키운 건 8할이 컵라면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요리를 굉장히 못 하시는 편이었어요. 단순히 손재주가 없어 못하는 것은 아니고, 당신께서 별 신경을 안 쓰셨죠. 싸게 사서 편하게 많이 먹을 수 있으면 장땡이라는 철학의 소유자였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간혹 덤벙대기도 하세요. 된장국 건더기로 양파만 쓴다든지, 소금인줄 알고 곰국에 설탕을 붓는다던지...아침에 삼겹살 먹고 나간 적도 참 많았죠. 그래서 전 학교 급식이 참 맛있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들이 급식 맛없다고 투덜대면 마지못해 동의했어요. 하지만 속으로는 이게 왜 맛이 없는 거지? 이게 맛있는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제발 제 혀가 이걸 맛없다고 느끼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니 않았어요.


언제나 밥에 불만이 많았지만, 질풍노도의 중학생 시절만큼 인상 깊었던 때가 없어요. 당시 저는 외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방학에도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학원에 있었거든요. 학교에서라면 몰라도 학원에서 급식이 나올리 만무하니, 도시락을 싸가야 했죠. 뭐...맛 없는 집반찬 2~3개 정도 담겨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방학 첫 날, 학원 책상을 붙이고 서넛이서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개봉했는데...


밥과 김치...


만 들어있었어요. 너무 놀라서 도시락 가방을 뒤져봤는데 먼지빼곤 아무것도 안 나오거든요. 옆에서 친구들이 킬킬댔어요. 제 도시락만 빼고는...화려한 도시락이라고 부를만한 건 없었지만 그래도 계란말이라도 있고, 불고기도 있고 구색은 갖춰져 있는데 전 그냥 밥과 김치...그것도 깍두기...엉엉 ㅠㅠ....소심했던 저는 몸이 덜덜 떨렸지만 괜찮은 척을 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도 밥과 김치. 그 다음날도 밥과 김치. 4일째부터는 울컥해서, 중학교 3학년의 민감한 영혼은 스크래치가 잔뜩 난 채, 건물 비상계단에 앉아 혼자 밥을 먹었네요.


그렇게 일주일. 저는 결국 이대로는 못 살겠다, 폭발해서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통속극의 한 장면이었죠. 이게 뭐야!! 부끄럽단 말야!!!!!!!!!!!!! 어머니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알았어 아들, 엄마가 미안해...라며 통속극처럼 말을 받았고, 전 미안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방 침대 구석에 구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이번에는 당당하게 도시락을 열었는데...


밥과 김치...그리고 삼부자 김...


친구들은 다시 낄낄대고, 저는 얼굴이 화끈해졌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같이 낄낄댔습니다. 속으로는,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너무하지 않나. 그래서 밥을 먹는둥 마는둥 삼켜 넘기며, 친구들 반찬도 집어먹지 못하고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런 도시락도 삼 일 정도 갔어요. 이번엔 제가 복도로 나가는 대신 바로 폭발했죠. 차라리 그럴 거면 돈으로 줘!!! 엄마는 다시 한 번, 아들, 엄마가 미안해...라며 제 말을 받았죠. 그리고 다음날 어머니는 제 손에 돈을 쥐어주셨는데...


퇴계 이황...


천 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셨습니다. 아들, 밥 거르지 말고 꼬박꼬박 먹어야 해. 저는 입을 떡 벌리고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더 이상은 저항할 의지도 안 생기더군요. 


그 돈으로 음식점에 가는 건 가당치도 않았고...점심시간에 편의점에 가보니, 천 원으로 먹을 수 있는 건 몇 개 없었어요. 처음엔 삼각김밥을 먹다가, 양이 너무 안 차더군요. 그래서 컵라면을 먹었어요. 당시 농심 큰사발 시리즈가 800원이었다가, 나중에 850원으로 오르거든요. 맨날 컵라면만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하나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그래서 편의점 별로 돌면서 거의 모든 컵라면을 섭렵했던 기억이 나네요. 1000원이 넘는 컵라면이 있으면 끼니를 하루 거르거나 돈을 빌린 후 사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단종된 북어국면, 라우동 등...다 먹어봤어요. 또 학원이 입시체제로 돌입하면서 새벽까지 하는 바람에, 거의 몇 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컵라면을 먹게 됐거든요. 입시가 끝나갈 무렵에는 컵라면 맛만 보고도 대충 구분이 됐어요. 애들도 컵라면 고를 때마다 저에게 물어봤고...제가 큰사발 튀김우동을 참 많이 먹었는데, 그걸 보고 따라 먹더군요. 그리고 맛 없다며 저한테 불평을 늘어놓았는데...전 사실 그때쯤엔 딴 거 먹으면 속이 너무 쓰려서 튀김우동만 찾은 거였어요. 그때 농심에서 절 채용했어야 하는데...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 컵라면을 끊었고, 지금까지도 무척 싫어해요. 플라스틱 용기만 쳐다보고 있어도 그때의 속쓰림이 생각나는 것만 같아요.


전 그렇게 스무살 무렵까지 세상에서 우리 집밥만큼 맛 없는 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군대 가서 알았어요. 그 집밥마저 짬밥보단 낫더군요.




신청곡은 라면과 구공탄...이 아닌 명카드라이브의 냉면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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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랑 2014.04.22 19:24
    사연 감사드려요! 재밌는 사연이네요 ㅎㅎㅎ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하는 곳이었는데, 매일 도시락 반찬에 울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사연 감사드려요!
    글 쏨시가 예사가 아니신 것이.. 제 친구 같기도 하고 ㅎㅎㅎㅎ
    청취자 분 닉네임도 그 친구의 카카오톡 알림말이 생각나게 하네요 ㅎㅎㅎ

    혹시 제 친구가 아니시라면!
    쪽지로 카카오톡 아이디를 보내주시면
    키프티콘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친구가 되면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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